지난 5개월에 대한 회고
회고하기, 주저리 주저리
어느새 5월
시간은 참 성실하게 간다. 엊그제가 1월이었고 글또를 시작한 날이었는데 벌써 5월이 되었다. 상반기가 벌써 다 지나가고 있고 이미 1/4분기는 지나가버렸다.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건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최근들어 더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보니 한건 별로 없는데 시간만 간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뒤돌아보고자 한다.
지난 시간의 큰 축은 강의였던 것 같다. 22년 연말에 크리스마스 선물인지 강의 제안이 왔다. 이전에도 간단한 강의나 멘토링을 진행했었는데 직접 강의를 맡게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내가 데이터 직군에 발을 들이면서 강의를 들었었던 곳에서 제안이 와서 더 뜻 깊었던 것 같다. 당시에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를 해주시는 강사님들에 대해서 무한한 동경을 했었던 나였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여기서 강의를 한다고?’ 였다. 하지만 바로 거절하기는 싫어서 일단 얘기나 들어보자 하고 미팅요청을 보냈다.
미팅을 하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 지난 번에 했던 간단한 강의가 아니라, 진짜 내가 들었었던 그러한 강의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도 되는걸까? 수강생들을 만족시키는 강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뭔가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고, 제안을 수락했다.
강의를 만들어보다
강의에 대한 주제는 잡혀있었지만, 세부 커리큘럼을 정하는 것은 내 몫이였다. 중간 중간에 매니저님과 소통하면서 조정을 하긴 했지만, 내가 수강생을 예상하고 주제에 맞게 어떤 걸 가르칠지 정해야 했었다. 강의를 찍는 것도 아니고 그냥 커리큘럼만 정하는 거였는데 너무 어려웠다. 이 내용을 토대로 수강생 분들이 듣게 될 걸 생각하니 신중해졌고 부담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누굴 가르칠만큼 아는게 있는건지, 퀄러티 있는 강의를 낼 수 있을지, 괜히 욕만 먹는건 아닌지…
부담스럽고 걱정이 많이 됐지만, 내가 수강생이라고 가정하고 데이터 엔지니어로서 일을 시작했을때 궁금했던 점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데이터 엔지니어 세상에는 정말 많은 툴들이 있었다. 항상 보이고 들리는 Kafka, Kubernetes, 그나마 친숙했던 Airflow, Elasticsearch… 이런 툴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언제 저 도구를 쓰는거고 왜 쓰는거지?’였다. 정말 잘하시는 엔지니어 분들을 보면 어떤 목적이 있을 때 툴들을 툭툭 설치해서 붙이고 연결해서 어떤 프로덕트를 만들어내는데, 주니어 시절의 나로서는 왜 저 도구를 쓰는지, 왜 저 도구를 써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기본기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긴 했었다. CS나 DB 등등의 기본기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문서를 보더라도 친절하게 떠먹여 주는 문서는 없었다. “이 툴은 이래서 좋아, Super Fast!, 안정적이다” 사용목적에 대해서 친절하게 가이드해주는 문서는 참 찾기 힘들었었던 기억이 났다. 어떤 툴이 궁금해서 찾고 리서치해보긴 했는데 그래도 뭔가 잘 모르겠는… 항상 찜찜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서 사용목적과 기능을 잘 알려줄 수 있고, 이론적으로 어떤 점에서 장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실습으로 이걸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강의를 만들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결론을 짓고 나니 커리큘럼을 구상하는 것은 한결 편해졌다.
시간
커리큘럼을 구상하고 나니 마이크를 전달받게 되었다. 작은 마이크도 아니고 손보다 큰 마이크를 받게되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커리큘럼대로 강의 자료를 만들었는데, 생각한대로 자료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강의를 만들다 보니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꽤 많았다. 잘 모르는 걸 몰랐던 경우라도 강의를 촬영하면서 해당 개념을 설명하는데 강의 녹화중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를 통해 다시 느낀 것은 혼자 공부만 하는 것보다 글로 정리하는 것이 낫고, 글로 정리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설명을 할 수 있어야 이해를 완전히 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강의 자료를 만들다가 혼자 공부하는 시간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모자르게 되었다. 업무가 끝난 다음에는 공부를 해야했고, 강의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약속도 잡지 못하게 되었다. 업무에도 일부 영향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항상 공부하고 강의 자료를 만들다보니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고 누적된 스트레스로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운동을 하자니 몸이 피곤해지면서 강의 자료도 못 만들 것 같았고 그 시간에 얼른 자료 만들고 강의 녹화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지나오다 보니 쉴수도 없고 스트레스도 풀지 못해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게 된 것 같았다.
어느새 5월
어떻게든 버티자 버티자 하다보니 강의 최종마감인 날이 다가왔다. 4월 마지막 주 까지 작업을 계속 했었었고 교안과 강의에 대해서 최종 업로드를 하게 되었다. 아주 후련하면서도 더 나은 강의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좀 더 좋고 좀 더 완벽한 강의를 만들고 싶었는데… 강의를 하면서도 계속 느낀 생각이었고 강의가 끝난 후에도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중간 중간 강의말고 챙겨야 할 일들도 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했어서 시간도 여유롭지 않았고 강의는 정말 보통일이 아니구나… 업무에 여유가 있을정도로 실력이 있어야 강의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것이란걸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글또에 글은 거의 올리지도 못하고 허허허.. 글또를 4기부터 해왔는데 패스 못하고 글을 못쓴 적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 만큼 다른 공부를 하고 글을 작성할 것도 없었기도 했고 강의 자료로 만들어 둔건 많은데 이걸 블로그에 올리자니 찜찜하고 그래서 글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글도 꾸준히 잘 써봐야지! 했던 나였는데, 막판에 강의 진도가 잘 안나가게 되니까 모든 투자를 여기에만 하게 되어버렸다. 차마 계약을 어길 순 없으니… 내가 가꿔왔던 삶을 포기해버린다! 이 마인드였던 것일까? 그렇게 강의를 마치고 지저분해진 책상을 제대로 치우지도 못하고 해외여행을 갔다.
돌아보며
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또 많은 걸 잃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삶의 균형이 깨진 채로 살았던 것 같았다. 이전에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스트레스가 있을때는 운동과 사람만나는 것으로 풀곤했고, 업무를 하거나 개인 공부를 하면서 얻은 지식들을 글로 적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회사에서도 기술문서를 적게 쓰게 되고 운동이나 기타 다른 것들로 스트레스 해소가 되지 않으니, 단시간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SNS나 유튜브 등등에 시간을 쓸데 없이 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삶의 균형이 깨진채로 지내다 보니 정신적인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로 있게 되어서 어떤 걸 시작하기가 어려웠었고 해야할 것도 못하게 되면서 더 많은 스트레스가 몰려오게 되었었다.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는 이유는 강의도 끝났기도 했거니와 이전의 삶을 되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이전에 재미를 느꼈던 것들에 재미를 느끼기 위해 노력을 들이고 있다. 예전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기쁘기도 하고, 드디어 오랫동안 쓰지 못했던 글을 쓰게 되어서 힘을 얻게 된 것 같다. 이제 주변도 챙기면서 어떻게 살아봐야 할지 심플한 계획을 세워보고 싶다. 너무 장황하고 무거운 계획은 잠시 내려놓고 가까운 것부터 손에 잡아야겠다. 책상이 더러워보인다. 글을 업로드하고 책상부터 치워야겠다.
지난 5개월에 대한 회고